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은 예전에는 국제 무대에서 신뢰를 상징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의 백악관은 이 전통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습니다. 이제 정상회담은 외교가 아니라 퍼포먼스, 즉 정치적 생중계 시험대로 변했습니다.
대표적 사례는 2025년 5월, 남아공 대통령 시릴 라마포사의 백악관 방문이었습니다. 트럼프는 회담 중 백인 남아공 농민이 ‘제노사이드(집단학살)’의 피해자라며 라마포사에게 공개적인 압박을 가했습니다. 백악관 집무실의 조명을 줄이고 극우적 기사들을 멀티미디어로 띄우는 장면은, 더 이상 회담이 아닌 일종의 ‘선전 방송’이었습니다.
라마포사는 당황했지만, 격앙되기보다는 차분하게 “범죄 피해자의 대다수는 흑인”이라며 반박했습니다. 그러나 이 논리는 트럼프의 의도에는 영향을 주지 못했습니다. 그의 목표는 외교가 아니라, 미국 내 지지층—특히 백인 민족주의자들을 향한 메시지 전송이었기 때문입니다.
트럼프의 오벌오피스는 누구에게나 위험하다
이제 백악관을 방문하는 세계 지도자들은 단순히 협상이나 우호를 위해 오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생존력’을 시험받으러 오는 셈입니다. 우크라이나의 젤렌스키는 강하게 맞서며 국내 지지를 얻었지만, 트럼프의 미움을 사 한동안 백악관 출입조차 금지됐습니다. 요르단 국왕은 가자지구 난민 수용 압박을 받으면서도 미국 원조에 의존하는 처지 때문에 반박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프랑스 마크롱, 영국 스타머, 이탈리아 멜로니 등은 각자 트럼프의 ‘쇼’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을 구사하며 “칭찬과 정정보도”의 절묘한 줄타기를 선보였습니다. 이처럼 트럼프 백악관은 실질 외교의 공간이 아니라, 카메라와 지지층을 향한 무대입니다.
그렇다면, 한국 대통령이 방문한다면?
이제 상상해봅시다. 만약 한국의 새 대통령이 트럼프의 백악관을 찾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요? 트럼프식 깜짝쇼를 감안할 때, 다음과 같은 시나리오가 충분히 가능합니다.
1. 북한 문제에 대한 공개 질의
트럼프는 자신의 치적으로 김정은과의 관계를 자랑스럽게 여기므로, 한국 대통령에게 북한에 대한 입장 표명이나 트럼프식 접근법 지지를 강요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나는 김정은과 편지를 주고받았죠. 당신은 뭘 했나요?”
→ 이때 한국 대통령이 신중한 입장을 보이면, 트럼프는 이를 언론 앞에서 약한 리더십으로 몰고 갈 수 있습니다.
2. 방위비 분담 청구서 쇼
과거처럼 “한국은 공짜로 안보를 누린다”며 분담금 문제를 테이블 위에 올릴 수 있습니다. 심지어 청구서를 꺼내 직접 흔들 수도 있죠.
→ 이는 대미 외교에서 자존심 문제로 번지며, 국내 정치에 미묘한 파장을 줄 수 있습니다.
3. 삼성·현대 등 대기업을 소환
한국 경제에 대한 기여를 부각시키기보단, 미국 내 투자를 압박하는 방식으로 기업인을 초청하거나, 대통령에게 투자 약속을 공개 요구할 수 있습니다.
“삼성이 미국에 공장 짓는 건 당신 때문인가요, 내 정책 때문인가요?”
4. 중국과의 관계 공격
트럼프는 미중 경쟁 구도에서 편 가르기를 강요할 수 있습니다.
“중국이랑 가까우면서도, 미군 보호를 받는 게 말이 되나요?”
→ 중립을 지키려는 외교 노력이 오히려 양쪽 눈치 본다는 비난으로 번질 수 있습니다.
5. K-콘텐츠 깜짝 언급
BTS, 블랙핑크, 기생충 등 K-컬처를 거론하며 예상치 못한 질문으로 대화 흐름을 바꿀 수도 있습니다.
“그 영화, 대통령도 보셨죠? 저보다 연기 잘하던가요?”
→ 외교 의제의 희화화 리스크가 있는 부분입니다.
한국 대통령의 생존 전략은?
트럼프 백악관에서는 논리나 협상보다 이미지와 말의 톤이 더 중요합니다. 성공적인 생존 전략은 다음과 같은 요소를 필요로 합니다:
- 철저한 사전 시나리오 대응 훈련
- 감정 통제와 동시에 단호한 메시지
- 트럼프 언어를 이해하고, 필요 시 ‘칭찬+정정보도’ 혼합 전략
- 회담 전후로 국내 언론을 통한 의미 재해석 컨트롤
결론: ‘회담’이 아니라 ‘무대’다
트럼프의 백악관은 더 이상 정책 협의를 위한 조용한 공간이 아닙니다. 그것은 전 세계에 생중계되는 정치 무대이며, 각국 지도자들에게는 외교적 함정일 수 있습니다.
한국 대통령이 그 무대에 선다면, 중요한 것은 회담에서 무엇을 말했는가보다, 카메라 앞에서 어떤 장면이 남았는가일 수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외교가 아닌, 정치 커뮤니케이션의 시대가 왔다는 신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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